용천수조사 | 서귀포시 월평동, 강정동

관리자
발행일 2024-06-14 조회수 160



 
5월과 6월은 월평동과 강정동의 산물을 다녀왔습니다.
산물 따라 여정을 소개합니다.
 

월평동의 옛 이름은 '큰벵듸' 또는 달뱅듸'입니다. 마을의 형세가 달(月)과 같은 평대(坪垈)를 이룬다는 데서 '달벵듸'라 하고 이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 월평(月坪)이라고 전해집니다. 월평은 18세기 이전의 고지도에는 나오지 않고 19세기 중·후반 지도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중반부터 독립된 행정 마을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강정리에 속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강정동의 옛 이름은 '더늬', '더릐'인데 한자 표기는 가내(加來), 가래(加來)로 나타납니다. 강정동은 맑고 깨끗한 물을 이용해 한 때 논농사를 지어서 수확된 쌀을 임금님에게 진상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강정 애기는 곤밥(쌀밥)을 주면 울고 조밥을 주면 안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벼가 많이 생산되어 강정에서 재배되는 쌀은 섬에서 가장 좋은 으뜸 되는 쌀로 이름날 정도로 '제일강정'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 것도 풍부한 산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강정천과 악근천은 서귀포 시민의 식수로 이용하는 상수원이면서 피서지로 산물이 풍부하게 솟아나고 있습니다. 강정에는 3대 산물이 있는데 강정천의 수원을 이루고 있는 냇길이소, 악근천의 수원인 소왕물, 그리고 수도가 설치되기 전 주민들이 가장 많은 식수원으로 이용하였던 큰강정물입니다.


 

1. 행기소 | 서귀포시 월평동 519-1


[caption id="attachment_21847" align="aligncenter" width="1280"] 월평동에서 동물개(이첨장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으로 과거에 월평포구와 어부당이 있었던 곳. 월평에서 가장 동쪽바다로 이곳을 기점으로 강정 바다와 경계를 이룸)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조그만 하천이 있는데 그 하천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샘이 행기소이다. 행기소라는 이름은 생기소(生氣沼)가 변해서 된 이름이다. 행기소는 물이 맑고 깨끗해서 당에 가거나 정성을 들일 때 정화수로 이용되었고, 주로 마을 사람들의 식수로 이용되었다. 집에서 가까운 물은 통물이었지만 물양이 적어 많은 물이 흐르는 행기소에서 물을 길어갔다. 그러나 행기소는 계단이 많아 물을 지고 올라오기 힘든 지경에 있었다. 행기소가 멀어서 물을 길고 오는 시간은 꽤 걸렸다. 여름철에는 물이 차갑고 시원해서 동네사람들의 목욕장소로도 유명했다. 행기소 주변에는 웃소와 알소가 있는데 이곳에 주민들이 목욕을 하러 왔었다. 웃소에서는 주로 남자들이 목욕을 했고, 알소에서는 여자들과 아이들이 목욕을 했다. 행기소물은 무그레미골 논농사에 필요한 물로 이용되었다. 웃소의 물이 알소로 내려오는 동안 중간중간에서 나는 물들이 합쳐져 알소에 모이는 물의 양이 상당히 많아 이 물을 논농사 지경에 흐를 수 있도록 논골을 만들어 이용했다. 지금도 무그레미 지역의 하우스에 농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행기소깍의 물은 소나 말들이 먹는 물이기도 했다. 소를 키우는 사람들은 쇠막(말이나 소를 기르는 공간을 뜻하는 제주어)에 있는 소나 말을 끌고 하루에 한 번씩 행기소에 물을 먹이로 갔다. 행기소에는 겡이(게의 제주어)들이 많았는데 덩굴에 된장을 묻혀 물속에 넣으면 겡이가 그 덩굴을 따라 올라왔다.[/caption]
 

2. 동해물 | 월평동 98



[caption id="attachment_21848" align="aligncenter" width="1280"] 옛날 첨장 벼슬을 하였던 이(李)씨 성을 가진 자가 귀향 온 후 살면서 이곳에서 나는 물을 이용해 논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 산물을 ‘이첨장물’이라고도 하는데 ‘동해물’ 위에 있는 지경을 ‘게자릿물’이라고 했다 전해진다. 과거 이 물을 이용해 고구마전분공장의 공업용수로, 또한 월평지경에 있는 ‘무끄레미’지경까지 이 물을 이용해 논농사를 지었고, 강정 지경인 ‘빈내코지’까지도 이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지었다. 이물골깍에 있는 포구를 ‘동물케’, ‘동물포구’라 했다. 강정에 있던 전분공장은 대명산업, 대성산업, 합동산업, 남흥산업이었다. 대명은 강정천의 물을 이용하였고, 대성은 악근천의 물을 이용하였다. 합동은 법환쪽에 있는 조이통물(광수포, 너븐물)을, 남흥은 월평과 강정지경에 있는 이첨장물을 이용하였다.[/caption]
 

3. 통물 | 월평동 117-1


[caption id="attachment_21849" align="aligncenter" width="1280"] 아왜낭밭(아왜나무가 있는 곳을 뜻하는 제주어) 아래 짐꾼내 언덕 위에는 동쪽 통물과 서쪽 통물이 있었다. 통물은 땅에서 솟아나는 물인데 ‘통처럼 단장한 샘물’이라는 뜻이다. 통물은 식수뿐만 아니라 채소를 씻거나 빨래를 했던 물이다. 동쪽 통물과 서쪽 통물 모두 상수도가 개발되기 전까지 마을 사람들의 식수로 이용되었다. 물이 깨끗해서 당에 갈 때 정화수로도 이용했던 물이다. 통물은 물이 '쫄쫄쫄' 조금 밖에 나지 않아서 허벅을 담은 대구덕을 팡 위에 놓고 기다리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물을 길어 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새벽에 물을 길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caption]
 

4. 엉커리물 | 서귀포시 강정동 3386-4 악근천 내



[caption id="attachment_21850" align="aligncenter" width="1600"] 엉커리물은 악근천 내에 소(沼)형태로 존재하며, 소 인근에 평상이 있어 주민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엉커리물에서 하류방향으로 용흥소공원이 위치하며, 인근에 장이소, 항구리소 안내표지판이 있다. ‘엉커리소 가는 길’이라는 안내표지판이 있고, 인근에 '엉커리'라는 명칭의 카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도록 이 지역 마을주민과 함께 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caption]
 

5. 운랑천 | 서귀포시 강정동 2053



[caption id="attachment_21851" align="aligncenter" width="1000"] 운랑천은 마을 중심에 위치하여 공동체적 삶의 중심으로 주민의 중요한 식수와 생활용수로 이용되었다. 심한 가뭄에도 물만은 마르지 않았는데, 물은 크게 네 칸으로 구분돼 사용됐다. 물이 용출하는 주위로 돌담을 쌓고 첫 번째 칸의 물은 제사용수와 식수로 사용됐다. 두 번째 칸은 음식물을 씻는 곳, 세 번째 칸은 몸을 씻는 곳, 네 번째 칸은 빨래를 하는 곳으로 이용됐으며, 이곳을 넘쳐 밖으로 흐르는 물은 가축들을 먹였다. 지금 운랑천의 모습은 1937년 3월에 시멘트로 단장하여 이용하다가 시설이 낡아 1985년에 운랑천이란 비석을 세우고 새롭게 제주판석 붙임으로 개수한 것이다.[/caption]
 

6. 소왕물 | 서귀포시 강정동 2336 악근천 내



[caption id="attachment_21852" align="aligncenter" width="1600"] 평소에 악근천에 흐르는 물의 수원인 이 소는 물이 깨끗하고 차갑기로 유명하다. 옛날에는 이 소의 주위에 소나무 수림과 잔디밭이 있어 여름철 백중날과 가을 처서에는 수백명의 주민들이 모여 씨름판을 벌이며 피서를 즐겼던 장소이기도 하다. 지금은 잔디밭이 모두 과수원으로 변해있다. 법환마을에서는 소왕물을 ‘지는물’이라고도 하는데 지난 날 이 곳에 물막이를 하여 ‘곳물’과 ‘배왓’, ‘상두낭술’, ‘근태왓’까지 물을 대어다가 논농사를 지었다.[/caption]
 

7. 두머니물 | 서귀포시 강정동 710-6 앞 조간대



[caption id="attachment_21853" align="aligncenter" width="1000"] 두머니물은 두면(頭面)이물이라고 해서 법환동과 강정동 바다의 경계에 있는 물이다. 이 물은 강정동 해녀와 법환동 해녀가 만나 인사를 나누었던 화합의 장소였다. 두머니물 안에서는 바위틈에서 솟는 할망물이 있어 정성을 드리는 사람, 심방들이 이 물을 주로 사용했으며, 법환 본향당에서 이용했던 물이다. 옛날에는 포제를 준비하기 위해 집을 정하고 그곳에서 일주일을 살며 정갈하게 몸을 수양을 했었는데, 포제를 지내는 사람들은 두머니물을 길어와서 목욕 재계 했다고 전해진다.[/caption]
 

8. 조이통물 | 서귀포시 강정동 2510 인근 미나리깡 근처



[caption id="attachment_21854" align="aligncenter" width="1400"] 서건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도랑을 따라 많은 물이 바다로 흐른다. 이 물은 해안에서 약 150여m 떨어진 언덕 아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지하수가 수로를 따라 흘러내리는 것으로, 이 용천을 ‘조이통’이라 부르고, 서건도 입구에서 바다로 빠져나가는 물을 ‘너븐물’이라고 한다. 조이통물은 용출량(10,000㎥내외/일)이 아주 많고 내륙에 있어 오래전부터 이 용천수를 미나리 재배에 이용하고 있다.[/caption]
 

9. 가시물 | 서귀포시 강정동 2892-4



[caption id="attachment_21855" align="aligncenter" width="1000"] 가시물은 아왜나무가 있는 길목에 있다고 해서 가시물 아왜낭목이라고도 했다. 이곳은 1795년부터 ‘무근당’이라는 강정본향당이 모셔진 곳이기도 하다. ‘무근’은 ‘오래된’이라는 제주어이다. 이 산물은 강정마을이 설촌되면서부터 이용되어 온 자정수(子正水)로 예전에는 동동네인 덧네동네의 식수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비닐하우스 등에서 농업용수로 이용하고 있다. 이 산물은 강정수원지 확장공사로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으며, 돌담을 싼 물통하나만 있고 고랑으로 자연적으로 물이 빠져 나가고 있다.[/caption]
 

10. 큰냇물 | 서귀포시 강정동 2895-3 강정천 내



[caption id="attachment_21856" align="aligncenter" width="1280"] 큰냇물은 강정수원지 옆 강정천 내에 위치하며, 이 일대의 수원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 과거 주민들의 빨래와 목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며, 이 일대의 물로 나룩농사(논농사)도 가능하게 하였다. 지금은 인적이 끊겼지만 여전히 서귀포시민의 수원에 일조 하고 있다.[/caption]
 

11. 섯동네통물 | 서귀포시 강정동 4583-1



[caption id="attachment_21857" align="aligncenter" width="1000"] 섯동네통물은 섯(서쪽)동네에 있기 때문에 유래되었다. 통물이라는 의미는 물을 통에 모았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이 삼매봉 앞으로 섶섬과 문섬이 화(火)봉으로 비준다고 하여 불을 이기기 위해서 뭇병디(물+넓은 들판)못과 통물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산물은 큰 비가 온 후 용출량이 넘쳐났다고 한다. 이 산물은 원래 통이 두 개로 물이 매우 차가운데 웃통은 여자들의 전용이고 알통은 남자들이 이용했다. 지금은 산물의 터가 정비되어 옛 정취가 없고, 산물이 말라있다.[/caption]
 

12. 큰강정물 | 서귀포시 강정동 5345-1



[caption id="attachment_21858" align="aligncenter" width="1000"] 강정동을 대표하는 산물은 강정초등학교에서 서남쪽에 있는 큰강정물이다. 이 산물은 ‘삼통아왜낭목’ 아래에 있는 물로 깨끗이 정비되어 있다. ‘삼통아왜낭목’은 수 백년 묵은 팽나무와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수림지대로 이 일대에 있었던 수림이 주된 수종이 ‘아왜나무’이며 ‘목’은 제주어로 입구를 뜻하여 이 지역을 ‘아왜나무 입구’라고 했다. 예로부터 이곳에서 육척 높이, 육척 넓이나 되는 되는 돌담을 가지런히 동서방향으로 쌓아 놓고 마을의 어른과 아이들이 이 잣담에 모여 앉아 옛 이야기도 들려주고 아왜나무 껍질로 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하고 장기를 두며 서로 담소를 니누었던 소통의 장소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주 4·3으로 옛 산물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지금의 모습은 1997년에 정비된 것이다. 강정동에서는 식수로 사용했던 가시물, 웃통물, 알통물보다 큰강정물을 가장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1965년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까지 주민들의 주 식수원이었다. 지금은 과수원 길가에서 용출되고 있다. 이 산물의 강우의 영향을 다소 받아 수량변화가 심한 편으로 갈수기에는 수량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사시사철 용출되는 특징이 있다. 큰강정물은 이름 그대로 수량이 풍부하여 식수 및 빨래터 외에도 이 물로 ‘청케’, ‘북헌터’, ‘구럼비’ 지경의 논농사를 할 수 있게 한 산물이었다. 앞 고랑에는 골세(소하천)이 흐르고 있다.[/caption]
 

13. 함백이물 | 서귀포시 강정동 5299-2



[caption id="attachment_21859" align="aligncenter" width="1000"] 함백이물은 선사유적이 발견된 곳으로 주로 논농사에 이용된 물이다. 이 산물은 큰강정물에서 남서쪽 300미터 지점에 있으며 큰강정물과 함께 강정 최대 곡창지대인 ‘정의논깍’으로 흘러나간다. 제주 4·3 이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 작은 촌락을 이뤄 이 산물을 식수로 이용했다고 한다.[/caption]
 

14. 안강정물 | 서귀포시 강정동 5068 앞 조간대



[caption id="attachment_21860" align="aligncenter" width="1000"] 안강정에 살았던 사람들의 식수였다. *안강정 : 강정동 5081번지가 중심으로 강정마을의 설촌에 유래를 둘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해변 동네이다. 지난 날 어업에 종사하며 살았던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곳으로 4·3사건 이전까지만 하여도 이(李), 강(姜), 오(吳)씨가 집성을 이루어 15가구 정도가 살고 있었으나 4·3사건으로 모두 섯동네로 마을이 소개되었다. 지금은 집터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caption]
 

15. 할망물 | 서귀포시 강정동 4812 과수원 내



[caption id="attachment_21861" align="aligncenter" width="1000"] 예로부터 가정에서 토신제를 지내거나 철갈이 등 정성을 드릴 일이 있을 때에는 꼭 이 물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 산물을 할망물이라 칭했다고 한다. 이 물을 성수(聖壽)로 여긴다는 뜻이며, 여기서 할망은 소원을 들어주는 신앙의 대상을 뜻한다. 산물 주변에는 습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으며, 산물에는 제주새뱅이의 서식을 확인한 바 있다.[/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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