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수조사 |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창천리(2023년 8차)

관리자
발행일 2023-11-21 조회수 11



 
2023년 한경면을 시작으로 대정읍 그리고 안덕면의 마을까지
올해의 산물 여정이 끝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간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곧 발간될 <용천수이야기6> 를 기대해주세요.
 
여덟번째 산물여행은 동광리-창천리였습니다.
동광리는 옛부터 산남과 산북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는데, 이 길을 지나던 이들에게 쉼을 주는 산물인

원물

이 있었습니다.
창천리에는 창고천을 따라 5개의 산물이 있었는데, 진소옆물(창고샘) - 오뺨물 - 통물 - 남당물 - 영구물이었습니다.
 

동광리는 구전에 의하면 약 170년 전 풍수사가 머물면서 이 일대의 지형지세를 살핀 다음 말하길 "춤을 추는 어린이를 닮았다" 한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이 마을 설촌터에는 지금도 대나무가 무성하다. 이 마을은 본디 식수원이 없어 마을털로는 적합하지 않았으나 화전농을 하기에는 매우 적당한 지대여서 바닷가에 살던 이들이 이주했으며 제주 양씨가 이주해온 것을 계기로 마을이 점점 커지니 '자단리'에서 각 마을들이 독립해 나가고 이 지역을 포함하여 '광청리'라고 했다가 다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동쪽에 있는 광청리란 뜻으로 '동광리'라 하게 되었다. 이 마을은 제주의 서부 중산간 지대에 자리잡고 있어 산남과 산북을 잇는 지름길이 닦여 있음으로하여 일찍이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창천리는 '포시남마루'라 하여 10여 가호가 모여사는 작은 마을로 조선조 현종 15년(서기 1674년)에 대정현 상모리 강진의 장남 강위빙이 설촌한 마을로 내에 창고처럼 생긴 암굴이 있다 하여 '창고천리'로 불리워지게 되었으며, 1914년 일제강점기에 토지세부측량이 실시되어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창천리'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강위빙이 맨 처음 이주하여 정착한 곳은 창천리 160번지 일대라고 한다. 이 창고내를 따라 하류에 이르면 원시주거형태의 하나인 바위그늘집터가 여러군데 산재하여 고고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 바위그늘집이란 선사시대 사람이 거주했던 곳으로 제주어로는 '엉' 또는 '엉덕'이라고 부른다.


 
원물 |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381-7
[caption id="attachment_21502" align="aligncenter" width="1000"] 원물오름의 명칭은 남녘기슭에 있는 샘에 연유한다. 예전에 이 부근에 삶의 터전을 잡은 사람이 이곳에 습지가 형성돼 있음을 알고 봤더니 맑은 물이 솟아나왔다고 한다. 이 샘물은 생수가 없는 인근 주민의 생명수와도 같은 것이었다. 현재는 용천수 아래에 큰 연못이 있고 데크시설을 해놓았다. 용천수 주변의 식생은 예덕나무, 보리수, 왕초피나무, 산뽕나무, 꾸지뽕나무, 찔레, 상산나무, 구실잣밤나무, 벚나무, 후박나무, 좀깨잎나무, 참빗살나무, 노린재나무, 참느릅나무 등이 있다. 물 안에는 마름, 붕어마름 등 수생식물이 많이 자라 있어 물이 정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caption]
 
진소옆물(창고샘) |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160-4 길건너편 버스정류장 뒤 창고천생태공원 탐방로로 진입
[caption id="attachment_21503" align="aligncenter" width="1000"] 진소옆물(창고샘)은 바위그늘 집터인 궤(동굴)에 있는 산물이다. 창고샘은 궤물이라고도 하는데 창천삼거리 서귀포방면 창천초등학교 버스정류장 뒤 하천에 있다. 하천에는 조그만 폭포로 만들어진 진소가 있는데, 진소 앞 큰 바위 뒤 궤에 숨겨진 산물이 창고샘이다. 이 산물은 하나의 바위로 된 엉(언덕)에 두 개의 궤가 있는데 왼쪽은 샘이고 오른쪽은 당이다. 한 바위 속에 일궤당신을 모시고 있어 산물이 당이고 당이 산물인 셈이다. 이 산물은 물이 솟는 사각구멍과 두 개의 물통을 갖고 있으나 하천범람으로 떠 밀려온 자갈과 토사로 가득 메워져 있다. 그러나 당신의 힘이라고 할까 메워진 통에 개념치 않고 물은 여전히 흘러 내리고 있다.[/caption]
 
오뺨물 |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449-4
[caption id="attachment_21504" align="aligncenter" width="1000"] 샘물 앞에 있는 나무에서 올빼미(옥빰)가 밤마다 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이 일대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올빼미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산물은 살아 있다. 산물터는 그대로 보존되었지만 바로 옆 하수관로가 있어 아쉬움이 남는 산물이다. 두 지점에서 용출됨을 확인하였다.[/caption]
 
통물 |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409-1
[caption id="attachment_21505" align="aligncenter" width="1000"] 통물은 통나무를 깍아 큰 통물을 만들어 물을 받고 마을의 식수로 사용했던 산물이다. 이 산물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궤에서 용출되는데 물은 궤에서 직접 뜨지 않고 궤 밑에 식수통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해놓았는데 동굴이 무너지지않게 돌과 시멘트로 축조하여 1956년에 준공했다고 쓰여있다. 지금의 산물의 형태로 볼 때 1956년에 개조되었다가 콘크리트로 확장되면서 많이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안내표지판은 없었으며, 물팡, 물통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훼손되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하다.[/caption]
 
남당물 |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1271
[caption id="attachment_21506" align="aligncenter" width="1000"] 남당물은 남당물동산 교차로에서 남서쪽으로 300미터 떨어진 창고천 사이 언덕빼기에 있는 산물로 남당과 관련된 산물이다.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이 산물은 3칸의 통으로 개조되어 옛 모양은 찾을 수가 없으나 물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솟아나고 있다. 남당은 조선조 숙종 28년에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창고천 인근에 있던 신당을 철거시키자 이 당의 신앙민 일부가 남서쪽으로 이동하여 남쪽에 다시 당을 세웠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감산리와 경계지역으로 지금은 당은 없어지고 감귤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산물이 있는 곳은 작은 쉼터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용출량 관측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지만, 안내표지판은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caption]
 
영구물 |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1291
[caption id="attachment_21507" align="aligncenter" width="1000"] 영구물은 남당물동산에서 남서방향으로 450미터 떨어진 군산기슭에 있는 산물로 아무리 가물어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영구히 흐르는 물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물은 바위를 지붕으로 한 자그마한 토굴에서 솟아나 일자형 수로를 통해 아래 있는 작은 연못으로 물이 모여지도록 만들어졌다. 산물은 옆에 있는 과수원에서 생활용수로 이용하고 있으며, 산물에서 나온 물들은 아래 얕은 연못을 형성하여 직박구리와 같은 야생동물을 살리고 있다.[/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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