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산리는 고려조 목종 10년(서기 1007년)께 화산폭발로 군산과 월라봉이 융기하여 솟아나면서 안덕계곡과 창고천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는 역사 깊은 마을로 고려때부터 이미 집집마다 감귤이 재배되었던 데서 '감산리' 라고 마을 이름을 짓게 된 연유라고 하며, 일제강점기때는 면소재지로서 이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다른 마을이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리거나 고쳐 부른 경우가 허다한데 이 마을은 조선조때까지 감산촌으로 해방 후에는 '감산리'라는 단일 이름을 고수한 마을이기도 하다. 이 곳에는 고려조 말기부터 수많은 유배객들이 적거되거나 위리 안치되는 일이 빈번했으며 이를 계기로 이들에 의해 마을에 학문이 전수되는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