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수 조사(6차) | 금성리, 봉성리, 어음리, 상대리, 동명리, 명월리

관리자
발행일 2022-06-28 조회수 250



 

용천수 조사 | 2022.06.23



금성리, 봉성리, 어음리, 상대리, 동명리, 명월리 일대



 
이번 조사에서는 간만에 용출량이 매우 훌륭한 용천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마을의 용천수 였을까요?
아래의 내용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마을마다 지닌 용천수는 아래와 같습니다.


  • 금악리 : 정물


  • 어음리 : 홍골약수물, 뒷세미, 공세미


  • 상대리 : 돌객이물


  • 동명리 : 문수물, 한새미, 개명물, 문두물, 작지물


  • 명월리 : 금수천(짐수네물), 조물





 


  1. 정물 |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산 52-1





[caption id="attachment_19431" align="alignnone" width="640"] 뭇 생명들을 살리고 있는 산물[/caption]
정물오름에 있는 용천수인 정물은 용천수 샘 두개가 옆으로 나란히 있어 쌍둥이 샘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둥그런 샘 두 개가 마치 안경 같다 하여 안경물이라 하기도 하지요. 중산간 지역은 식수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 물을 귀하게 여겼는데 정물샘도 그 중 하나입니다. 물이 깨끗하고 양이 많아 이곳에서 꽤 먼 곳의 중산간 마을 사람들도 물을 떠다 마셨다고 합니다.
샘물에서 나온 물은 사람들이 먹고 아래로 V자 형태로 나눠진 물길을 따라 물이 흐르면 그 물은 우마들이 먹는 물로 사용했다 합니다. 정물에서 나온 물이 아래로 또 흘러 아름다운 습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습지에는 고마리, 큰고랭이, 골풀, 마름, 송이고랭이 등 습지식물이 풍부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개구리, 유혈목이 등의 양서파충류도 많이 서식하고 있어 이를 먹기 위해 백로, 왜가리도 자주 찾고 있습니다. 흰뺨검둥오리들도 이곳에서 먹이도 먹고 휴식을 즐기기도 합니다. 노루와 오소리들도 이 습지를 찾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물이 주변의 뭇 생명들을 살리고 있었습니다.
 
2. 홍골약수물 | 제주시 어음리 산 11
[caption id="attachment_19433" align="alignnone" width="640"] 물이 마른 홍골약수물[/caption]
홍골약수물은 문헌자료에도 찾기 힘든 용천수였습니다. 좌표상의 위치를 찾아가 확인해보니 함몰된 습지형태의 지형이 있긴 했으나 물이 없고 축축한 땅인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3. 공세미 |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 3862 앞 정지내 하천)
[caption id="attachment_19434" align="alignnone" width="640"] 정지내 소하천 정비를 하면서 시멘트가 덮여 물이 나오지 않는다.[/caption]
공세미는 부면동 서북쪽 하천인 정지내 동쪽 커다란 바위 밑 틈에서 흘러나오는 청량한 샘물을 일컬어 공세미라 했다 전해집니다. 이 샘물을 발견한 사람은 약 400여년 전 고응삼이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신분이 낮은 목자출신이었는데 풍수지리에 능통한 사람이라 어느날 장풍득수의 명당을 찾아 다니던 길에 이 곳 하천변에 이르러 물이 있음직한 지세이나 물을 찾지 못하여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때마침 참새 한쌍이 목욕을 하여 몸을 흠뻑 젖은 채 바위 틈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이 샘물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샘물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고응삼물이라 하다가 그 음이 축약되어 공세미라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이 공세미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커다란 웅덩이 안통과 바깥통에 저장되었는데 부면동 사람들은 1960년대까지 이 청량한 물을 식수로 이용하여 생활을 하였습니다.
 
4. 뒷세미 |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 3547-3
[caption id="attachment_19435" align="alignnone" width="640"] 계원동 마을을 살린 산물[/caption]
뒷세미는 계원동 마을 뒤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마을에는 과거 40여가구 200여명이 살았는데 이 마을사람들의 식수로 사용하던 물입니다.  수돗물이 공급되면서 방치되어 오다가 2017년 12월 17일 쾌적한 마을환경을 조성하고자 정비를 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정자와 함께 마을 사람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5. 돌객이물 | 제주시 한림읍 상대리 468
[caption id="attachment_19436" align="alignnone" width="640"] 애월, 한림, 한경 일대의 가장 큰 못이었던 돌각이샘[/caption]
돌객이물은 초승달의 뿔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한자말로 월각인데 그 뜻으로 달각을 소리나는 대로 말하다보니 돌객이라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도로 개설 이전에는 2개의 연못이 서로 연결되어 있던 연못이었지만 현재는 따로 되어 있습니다. 연못의 면적이 600㎡이고, 서쪽에 음용수로 활용되던 작은 물통이 있습니다. 물통 주변은 가시덤불로 우거져 있었습니다.
돌객이못은 애월, 한림, 한경 일대의 중산간  연못 가운데 가장 큰 못이었습니다. 돌객이못은 상대리를 비롯 귀덕과 대림리 등 마을에서 우마급수장으로 활용할 만큼 쓰임새도 컸습니다. 그러나 도로가 확장됨에 따라 일부는 매립되고 가뭄때 물을 빼 사용하려고 양수시설을 갖추는 바람에 본래 모습이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지금 상태는 초승달 뿔모양의 형태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이 일대는 물이 좋고 전망이 좋아 4.3이전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고, 4.3때에는 무장대를 진압하기 위한 경찰 주둔소가 있었다 합니다. 그러나 4.3때 소개령과 함께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당시 마을 규모를 가능할 수 있는 대나무숲만 남아 세월의 흔적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6. 문수물 |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 151-2
[caption id="attachment_19437" align="alignnone" width="640"] 동네명도 바꿀 정도의 소중한 문수동자 혜안이 담긴 산물[/caption]
문수물은 명월리의 근원이 되는 밝은오름 동쪽에서 흐르는 문수천 동측에 있으며 팽나무 노목의 기를 받으며 솟아나고 있다. 이 산물 입구에 동명리 문수동이라는 표지석이 있는데 이 산물로 인해 동네이름을 문수동이라 바꾸었으나 실제 문수물의 지번은 명월리 입니다. 이처럼 마을의 명칭을 바꿀 정도로 마을에서 소중하게 여기고 가꾸어 온 문수물은 명월리만 아니라 동명리 문수동에서도 귀하게 썼던 산물입니다.
예전에 문수물 근처에는 문수암이라는 절이 있었고 지금은 서측 100m거리에 천수원이 있어 조선시대 임금인 세조의 목욕을 시켜 준 문수동자의 인연을 상상하게 해줍니다. 마을에서는 산물 언덕에 문수천(汶水泉)이라 새겨진 비명도 원래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의미하는 文殊泉이었는데 불교를 배척하던 시대에 불교와 관련을 없애기 위해 汶水泉으로 기록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수물은 석가모니불의 왼쪽에 자리한 문수동자의 혜안처럼 물통을 만들고 한 방울의 물도 버림이 없이 귀하게 썼던 마을 사람들의 지혜로움이 담겨있는 산물이 되었습니다.
문수천 입구 비석에 '소화9년(1934년) 4월 준공'이라 쓴 것으로 볼 때, 이때 이 산물을 정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시멘트 벽에 1999년 9월 30일이란 날짜가 적어진 것으로 볼 때 시멘트를 사용하여 돌담을 다시 재정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7. 한새미 |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 880
[caption id="attachment_19438" align="alignnone" width="640"] 동명리 마을의 산물[/caption]
한새미물은 마을 안에 직사각형의 담을 쌓아 만든 2개의 물입니다. 설촌 당시부터 물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안에는 계단이 만들어졌고 남쪽 물통 북서쪽에 ㄱ자 모양, 높이 1m 정도의 물팡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윗칸이 식수용으로 추정됩니다. 새미라고 부를 것으로 보아 용천수 일 가능성이 큰 데 실제로 남쪽 벽에 작은 구멍이 있어 그 구멍에서 물이 나왔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용출량이 거의 없습니다. 두 물통의 가운데 서쪽에 세워진 표석에 새마을 가꾸기 1971년 4월10일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시기에 정비 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8. 금수천/짐수네물 |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 1849-1
[caption id="attachment_19439" align="alignnone" width="640"] 중동마을의 귀했던 산물[/caption]
 
금수천은 중동마을에 있는 용천수 입니다. 처음에는 비 온 후 일시적으로 솟아나는 용천수였으나 마을 인구가 늘어나 자주 이용한 결과 더 이상 용출하지 않아 현재는 봉천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통의 깊이는 1.5~2m인데 도로 건너에는 보다 넓은 물통이 연못처럼 만들어져 있습니다. 상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도로 위의 사각형 물통은 식수로 이용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애기구덕만큼 작은 물통이었지만 인구가 늘어나면서 마을사람들이 크기를 늘렸다합니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건 1930년대 초반이라 합니다. 물통은 위, 중간, 아래 3개로 만들었으나 길을 내면서 중간에 있던 물통은 매립했다 합니다. 사용량에 비해 용출량이 적었기 때문에 물을 허벅에 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서 순서를 오래 기다려야 했었습니다. 중동마을에는 동네 경조사가 있을 때에 그 집에 필요한 물을 우선 공급하도록 배려하는 풍습이 있어서 일반 가정에서는 멀리 문수물이나 개명물을 길러 가야 하기도 했습니다.
도로 아래에 있는 물은 마소에게 먹이는 용도로 이용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민물장어가 살기도 했고 여름이면 마을 어린이들이 목욕하기도 했었습니다. 저녁이면 어른들도 목욕하러 이곳을 찾았는데 시간을 정하여 남녀 구분을 하였다 합니다. 물통 동쪽 벽에는 도수로로 보이는 석조시설이 있습니다.
 
9. 개명물 |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 2062-4
[caption id="attachment_19440" align="alignnone" width="640"] 옹포천의 물을 사용한 개명물[/caption]
개명물은 물맛이 좋다고 알려져 1960년대에 상수원으로 이용하였는데 이 물의 특징은 땅에서 솟는 산물들과 달리 누운오름 남사면에서 발원하는 옹포천에서 용출되는 물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가뭄에는 물이 메마르기도 합니다. 이 산물은 원래 사각 돌담의 공동빨래터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지금은 비가림 시설은 한 현대식 구조물로 개조해버렸습니다.
 
10. 조물 | 제주시 한림읍 명월성로 66-6 황룡사 안
 
[caption id="attachment_19442" align="alignnone" width="478"] 물이 맑고 용출량이 어마했던 조물[/caption]
조물은 황룡사 안에 있는 산물로 절의 생활용수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11. 문두물 |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 2077-1
[caption id="attachment_19443" align="alignnone" width="640"] 물이 맑아 버들치와 다슬기가 살고 있다[/caption]
문두물은 개명물에서 북동쪽으로 17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이 역시 옹포천의 산물입니다. 입구에는 물을 수리하는데 공헌한 기념비가 있습니다. 이 산물은 두 개의 물통으로 식수용과 빨래용으로 나누어 사용했는데 이 물을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고 좋아진다는 속설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지금의 모습은 한국농어촌공사의 지원으로  개조되어 옛 모습을 잃었지만 마을 주민들이 주기적으로 관리하여 버들치와 다슬기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12. 작지물 |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 1928-4
[caption id="attachment_19444" align="alignnone" width="640"] 이름그대로 작지만 맑은 물이 나고 있었다.[/caption]
문두물과 멀지 않은 곳에 작지물이 있습니다. 이름처럼 작지만 깨끗하였고 주변에 울타리가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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