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수리(龍水里)는 과거 두모리(頭毛里)의 한 취락이었다가 100여 년 전에 독립하여 현재 공식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옛 이름을 ‘지새포’ 또는 ‘지서개’라 하고 있습니다. 지서개는 지서 기와를 말하며 용수리 포구의 절부암 언덕동산 ‘굴터’라고 부른 곳에 도요지가 있었습니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기왓장 부스러기 등 그 흔적을 볼 수 있었으나 이곳의 도공들은 왜구의 침입을 피하고 질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하여 무릉2리 평지동, 신평리, 구억리 등으로 이주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평지동, 신평리, 구억리 등에는 도요지가 있음). 이에 용당리까지 포함하고 있다가 1953년에 용당리와 분리되고 ‘벅끌’이라고도 하는 법기동과 ‘주근디머들(주정동)’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용당리 마을의 옛 이름은 부포(釜浦/가못개) 또는 우포(友浦/구녕개)라고 불렀으며, 탐라지 등 기록에는 방호소(防護所)와 수전소(水戰所) 등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기록들을 미루어 볼 때 용수리 설촌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300~400여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용수리에는 절부암(節婦岩)이 있으며, 고산리와의 경계에 차귀도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