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수 조사

관리자
발행일 2021-12-16 조회수 148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지난 2018년부터 용천수 조사를 매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사 결과를 정리하여 용천수 가이드북도 작년까지 3권 발간했습니다.



올해도 용천수 보전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용천수를 중심으로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조사를 토대로 용천수 가이드북4를 제작 중입니다.



올해 마지막 조사가 지난 11월 25일에 있었습니다.





이날은 시흥리 큰물, 비자림 산감(山監)식수터, 금용사 우물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시흥리 큰물은 매립되고 사라져 있었습니다.



용천수와 갈대밭을 함께 매립해 버린 것입니다. 최근의 일입니다.



아직도 용천수의 제도적 보전은 요원하기만 한 현실입니다.





시흥리 큰물을 비롯하여 산감 식수터에 대해 싣습니다.









  • 시흥리 큰물









위치 :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1008-1



[caption id="attachment_18877" align="aligncenter" width="4128"] 큰물 있던 자리. 용천수와 갈대밭이 넓게 펼쳐진 곳이었으나 창고 건물 공사를 위해 최근에 매립하여 버렸다.[/caption]

시흥리(始興里)는 정의현의 첫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로소 흥성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또한 시흥리는 힘센 장사 전설이 담긴 마을이다. 옛부터 힘센 장사가 많이 나와 '심돌'이라고도 불렸다.



시흥리 설촌의 중심이 되는 산물은 큰물이다. 하지만 큰물은 얼마 전 매립되어 버렸다. 용천수뿐만 아니라 넓은 갈대밭과 함께. 여기에 창고를 짓겠다는 토지주의 신청을 행정당국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용천수와 습지에 대한 행정당국의 낮은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뼈아프다.



큰물은 상수도가 설치되기 전에는 시흥리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던 산물인데 시흥리의 역사도 매몰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큰물은 여자들이 주로 사용하였다고 해서 ‘예조통(여자통의 제주어)’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 산물로 인해 큰물이 있는 곳이라서 큰물동네라 한다.



큰물은 남자물과 여자물로 나누어 사용했었다. 큰물 여자통이라 했던 큰 나무 아래에서 용출되었는데 이 물로 주변에는 석창포와 갈대 등 습지식물이 풍성하게 있어 조류, 게 등 많은 동물들의 서식처가 되어주었다.



큰물 소나이통(남자통), 예조통(여자통)은 모두 같은 곳에서 나는 물로서 돈물(단물)이라고도 불렀다. 이 일대는 옛날 바다였기 때문에 물에 염분이 섞여있었다. 반면에 여름에는 차고 시원하며 겨울에 따뜻하다고 하여 돈물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큰물과 관련하여 시흥리의 힘센 장사 전설이 전해온다.



한 부부가 두산봉 뒤쪽에 살면서 시흥리 입구에 있는 ‘큰물’이라는 샘물을 길어다 먹었다. 부부의 딸도 남과 같이 허벅으로 이 물을 져 날랐다. 그 길은 좁고 험한 길이었다. 어느 겨울, 한풍이 몰아치는 날, 딸은 허벅에 물을 지고 그 길을 오르고 있었다. 몰아치는 눈발을 헤치며 가다 보니 내려오는 사슴 한 마리가 눈앞에 딱 마주쳤다. 사슴은 사람을 보자 길을 꺾어 도망가려 했다. 딸은 허벅을 진 채 훌쩍 내닫더니, 뛰는 사슴을 앞질러 가서 두 뿔을 잡고 홱 돌았다. 사슴이 벌렁 쓰러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사슴을 잡아 둘러메고 들어가니 부부도 딸의 힘에 놀랐다.



이처럼 마을이 힘이 세다고 전해지는 것은 전설처럼 큰물이 있기 때문이었지만 매립으로 인해 마을의 역사가 사라져버렸다. 더 안타까운 것은 큰물(예조통)이 사라지기 전에 큰물(남자통)은 오래전에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다.










  • 비자림 산감(山監)식수터









위치 :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산 15, 비자림 내



[caption id="attachment_18878" align="aligncenter" width="4128"] 산감식수터가 있던 자리. 현재는 수도만 놓여져있다.[/caption]

비자림은 세계에서 비자나무 단독림으로서는 가장 큰 규모를 갖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 3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예부터 비자나무 열매인 비자는 구충제로 많이 쓰였고, 나무는 재질이 좋아 고급가구나 바둑판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 비자림은 귀한 비자를 조정에 진상하려고 국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던 숲이다.



그래서 비자림에는 산감(山監, 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감독하는 사람)이 거주하였다. 이 산감이 거주하면서 식수로 사용하였던 산물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산물터가 있었다는 해설판만 남아있다. 또한 여기에 수도를 설치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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