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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용천수조사(5차) | 하가리, 애월리, 곽지리, 금성리

 

용천수 조사 | 2022. 05. 30 |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애월리, 곽지리, 금성리 일대

 

매월 용천수 조사를 하다보니 제주 어딜가나 쓰레기가 문제인데 용천수 안에도 생활쓰레기가 많아 날이 선선해지는 9월쯤 용천수를 돌며 정화활동을 하는 용천수 줍깅 캠페인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번 용천수 조사지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하가리 : 동지샘이물

애월리 : 큰물도리, 하물, 장공물, 하르방물

곽지리 : 과물

금성리 : 남당암수, 남당수

 

  1. 동지샘이물 |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1330-1

사시사철 마르지 않았다던 동지샘이물

동지샘이물은 하가리 망오름 앞에 있는 용천수로, 주변이 밭으로 경치도 빼어나고 용천수의 형태도 주변과 조화롭게 정비된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용출량이 적어 물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녹조류가 많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산물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한겨울 온세상이 얼어도 샘의 특성상 얼지 않고 이용할 수 있어 동지샘이라 하였습니다. 1936년에 하가리 전주민 역량을 한데모아 샘을 만들었으며 1970년대까지만해도 마을의 중요 행사인 제사, 경조사시에는 반드시 이 식수를 사용하였다 전해집니다. 현재의 모습은 2013년에 제주시청의 지원을 받아 정비된 모습이라 합니다.

 

2. 하물 | 제주시 애월읍 1727-5

마을 주민들의 쉼터로 이용되는 하물

하물은 큰물로 ‘물이 크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용출하는 물의 양이 많다는 의미인 제주방언 ‘하다’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애월 마을은 상애월과 하애월로 나누어 형성될 때 조선후기 주민들이 바다와 밀접한 하애월로 이주생활을 하면서 하물을 중심으로 마을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물은 마을 중심에 있으며 주민들의 생활용수로 이용되고 우마의 식수와 빨래터 또는 여인들의 노천 목욕탕으로 이용했습니다. 원래 애월리 하면 하물을 생각나게 할 만큼 옛부터 마을주민들의 식생활용수로 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동내에 경조사가 나면 ‘물부조’리고 하여 한 집에서 한 허벅씩 물을 길어다주고 부조를 대신했을 만큼 마을에 인정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였다 합니다. 하물은 물과 함께 솟아오른 바위를 경계로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칸을 나누어 이용하였습니다. 지금의 모습은 1981년을 시작으로 차츰 정비하여 갖춰진 모습입니다. 비록 원형은 잃어지만 마을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쉼터로 이용하는 등 삶과 용천수가 조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3. 장공물 | 제주시 애월읍 애월로13길 7

하물 바로 옆 장공물

장공물은 하물 바로 옆에 위치한 산물로 여성을 하물을, 남성은 하물 동쪽에 있는 장공물(장궁물, 장군물)을 사용했습니다. 이 산물은 암반을 뚫어 만든 물로 1926년 치수한 것을 기리기 위한 치수비가 있어 장공물로 부릅니다. 마을에서는 장공물은 윗물로 남성들이, 하물은 아랫물로 여성들이 사용하도록 구분했다고 하나, 근원은 모두 같은 물입니다. 이 산물은 애월진성에서 사용했던 물로 장군이 먹었다 하여 ‘장군물’이란 별칭도 갖고 있습니다. 이물도 하물을 개조할때 원형을 살려 재개수 하였습니다.

 

4. 하르방물 | 제주시 애월읍 1727

원형 그대로의 하르방물

하물 동측 2~3평 크기의 하르방물은 원형이 그대로 보전된 산물입니다.

 

5. 큰물도리 |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1871-1 앞 조간대

조간대에 있는 산물, 큰물도리

큰물도리는 조간대에 있는 산물로 원형이 잘 유지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안내표지판이 없어 용천수임을 알고 가지 않으면 용천수인지 모르고 지나칠 안타까운 산물이었습니다.

 

6. 과물 |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1566

곽지리의 모태가 된 산물

과물은 곽지리가 형성될때 하동 동네의 주 식수가 된 산물입니다. 과물은 물이 많고 물이 나는 곳이 곳곳에 있어 “물이 너무 많이 넘쳐 난다”고 하여 물이 과하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해안가의 다른 산물처럼 한 곳에 집중적으로 솟아오르지 않고 과물은 여러 곳에서 힘찬 물줄기를 솟아납니다. 그래서 남자용과 여자용으로 구분하여 사용했습니다. 남자 전용의 물은 몸도 씻지만 가축들의 식수로도 사용했다합니다. 여자 전용 물은 화향수라 하여 마을 포제, 새벽 할망당, 중요한 제사 같은 일에 반드시 사용했습니다.

 

7. 남당암수 | 제주시 애월읍 금성5길 44-7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산물, 남당암수

남당암수는 과오름 중 둘째봉인 샛오름의 용암이 흘러 곽지리와 금성리의 기반을 만들었고, 바닷가에 멈추어 금성리의 용머리를 만들었는데 이 용머리 부분에서 솟아나는 물입니다. 커다란 돌에서 솟아난다 하여 ‘암’이 붙게 되었습니다. 남당암수는 금성리 남당머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식수로 이용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겨울의 찬바람과 파도를 막기 위해 이곳에 울담을 쌓았습니다.

 

8. 남당수 | 제주시 애월읍 금성5길 44

금성리리를 있게 한 산물

금성리가 해안가에 마을을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자천의 물과 남당산물이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남당물은 곽지리의 경계가 되는 남당바위에서 솟는 물로 당에서 사용했던 물에서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남당은 뱃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해신당입니다. 사람들은 이 당집을 찾아 어선의 안전귀환, 풍어, 가족의 건강, 집안 번성을 위해 치성을 드렸는데 이 물을 찾았다고 합니다. 제례의식과 관련된 물을 성수라고 하여 정한수로 신성시 해 온 것은 물이 생명의 원천이자 낡고 묽은 것을 없애고 새것으로 바꾸는 재생력과 정화력을 지니고 있어서입니다. 남당물 역시 신성시 여긴 물로, 굿이나 치성을 드리기 위해 떠온 정화수는 기본 제물이었습니다. 이 산물은 당에서 사용했지만 수세가 좋아 여름철 백중날에 물 맞으면 무병장수한다 하여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평상시 남당물은 마을의 여성들이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정비하면서 바닥을 제주석 붙임으로 보수하고 옛 돌담 위에 다시 1미터 가량 더 높이 담을 쌓아 놓아 개수되었지만 옛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산물은 담을 쌓아 두 칸으로 나누고 들어가는 입구에 식수통, 그 안쪽에 빨래터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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