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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식

용천수조사(3차)_ 상귀리, 수산리, 장전리, 유수암리 일대

 

 용천수조사(3차) | 2022.04.28  | 상귀리, 수산리, 장전리, 유수암리 일대

 

이번 용천수 조사 지역은 상귀리, 수산리, 장전리, 유수암리 일대였습니다.

마을마다 가지고 있는 용천수는 아래와 같습니다.

  •  상귀리 :  푼첸물(분첸물), 논골물(농공물), 소왕물, 옹성물, 구시물
  • 수산리 : 장수물, 큰섬지
  • 장전리: 마구리물(마고리물), 건나물, 마고수
  • 유수암리 : 유수암천, 궤물

 

관리와 보전이 잘 되어 있는 곳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용천수는 찾기 힘들고  찾았다 하더라도 용천수 본래의 아름다움 모습을 잃어 아쉬움이 많이 큽니다.

이번 지역의 용천수는 몇 개의 용천수를 제외하고는 관리가 잘 되고 있고, 마을에서도 적극 활용하고 있어 조사하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용천수 물팡에 앉아 물이 용출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었던,  상귀리, 수산리, 장전리, 유수암리의 용천수를 소개합니다.

 

  1. 논골물(농공물) |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396-1 | 용출양호 | 안내표지판 없음

원형이 잘 보전된 농공물의 모습

논골은 논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논골물은 마을에서 벼를 수확할 수 있게 해 준 물입니다. 옛날 이 물을 액 300평의 논에 공급했다고 합니다. 이 산물은 논골 사람들의 식수이며 논농사를 위한 관개용수로 사용됐습니다. 농공물로 인해 이 일대는 예전부터 논농사가 활발했는데, 지금은 논은 사라지고 모두 밭으로 변했습니다. 이 산물은 암반 하부에서 용출되어 사각 식수통을 채우고 일자형 발래통을 흘러가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과거 만큼은 아니지만 현재 용출상태는 양호했으며, 용천수가 주변 밭으로 활용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팽나무와 어우러진 용천수의 모습이 아름다웠지만 용천수에 대한 안내표지판이 없어 아쉬움이 컸습니다.

 

2. 푼첸물(분첸물) |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217-4 | 용출 양호 | 안내표지판 없음

부처물이라 부리리던 푼첸물(분첸물)

푼체물이 있는 동네를 부처물동이라고 합니다. 부처물동은 원래 푼체왓(밭)이라는 농경지였는데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동네입니다. 한 때 4.3사건으로 폐동되기도 했지만 마을 중심에는 푼체물이 있습니다. ‘푼체’는 ‘부채’의 제주어와 ‘물’의 합성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마을에서는 옛날에 북쪽 파군봉을 끼고 자리잡은 병풍천에 사찰이 있어, 가정의 평안과 안녕을 비는 물터라는 뜻에서 ‘부처물’이라고도 불렀습니다. 하지만 용천수를 정비하면서 현재는 도로와 주택사이에 끼여 있어서 계단을 내려가서 보지 않으면 용천수 임을 알기 어려울 정도 입니다. 용천수임을 알리는 안내표지판이 없어 아쉬움이 컸습니다.

 

3. 소왕물 |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1393-1 | 용출 매우 좋음 | 용천수 정비와 활용 의 가장 좋은 예

탐라국 태자 이야기가 담긴 소왕물

항파두리성 북쭉에 위치한 소앵동에 있는 소왕물동산 아래에는 소왕물이 있습니다. 소왕물이라고 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750여년전 고씨에 의해 처음 설촌되었기 때문에 탐라시대 때 탐라 왕가에서 먹었던 물이거나, 항몽시절 삼별초 태자가 먹었던 물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소왕물은 중간에 복원이 되었는데 옛 모습이 잘 남겨져 있어 앞으로의 용천수 관리정책에도 사례가 될 만합니다. 제주의 용천수가 일제감정기나 현대에 들어와서 정비한 것들이 대부분 시멘트로 공사했지만 이 곳은 시멘트를 쓰지 않고 돌로만 축조했다는 점에서도 가치 높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산물의 돌담은 무틈새사선막쌓기 축조방법으로 꽉 차게 석축하여 전형적인 제주 돌쌓기 형태를 보여줍니다. 사각물통도 잘 다듬어진 사각 왕석을 성곽처럼 쌓고 물팡은 깊고 넓적한 돌로 만들었습니다. 물 사용도 식수, 음식물 씻기, 빨래터, 기타 잡용수로 잘 구분해 놓았습니다. 조사 당시 용천수는 인근의 미나리 밭의 농업용수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4. 큰섬지| 제주시 애월읍 수산서6길 9-3 | 용출 양호

수산리의 유일한 용천수로 남은 큰섬지

 

수산리는 물이 맑고 아름다운 산이 있는 마을 입니다. 산은 수산봉(물메오름)을 말하는데 ‘정상에 물이 있는 오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수산봉에는 물이 없습니다. 이유는 수산망(봉수대)를 설치하면서 물이 고이는 원형 화구인 함몰지를 매립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수산봉 옆에는 수산저수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이 수산저수지 안에는 예전에 용천수가  몇 개 있었지만 모두 안에 잠겨버렸습니다. 이 마을에는 공섬지, 명세왓섬지, 동녁섬지, 새섬지라는 산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사라지고 마을에 유일하게 남은 용천수가 큰섬지 입니다.

이 마을에서는 다른 마을처럼 샘을 의미하는 제주어인 ‘세미’, ‘새미’라 하지 않고 ‘섬지’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산물의 뜻으로 ‘섬지’가 쓰이는 특이한 지역입니다. 이렇게 ‘섬’을 쓰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상가리에서도 ‘삼’ 혹은 ‘섬’을 붙인 ‘맥구섬’, ‘멱구섬’ 산물이 있습니다. 이런 사실 비추어 볼때, ‘섬’은 산물(샘)을 뜻하는 제주어라 할 수 있습니다.

큰섬지는 수선서6길 수은교 남쪽 수산천 냇가 큰섬지교에 있는 대천(大泉)이라 부르는 큰 산물입니다. 장전, 소길리 사람들까지도 이 산물을 이용했을 정도로 풍부하게 솟아나는 마을의 식수원이었습니다. 이 산물은 물허벅 여인상이 있는 벼랑 측벽과 끝에서 용출되는 산물로 마을에서 보호시설을 설치하여 보존중이었습니다. 산물은 우물처럼 원형의 통을 가지고 있으며 통 안으로 출입할 수 있는 계단이 놓여 있습니다.

 

5. 장수물 |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1104-3 하천내 | 용출 양호 |

김통정 장군의 발자국에서 솟아나는 산물

고성천 계곡에는 삼별초의 최후 보류인 항파두리성 전투시 김통정 장군이 성 위에서 뛰어내리자 바위에 발자국이 패이면서 맑은 샘물이 솟아났다는 전설 있는 장수물이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여몽연합군에 쫓긴 김통정 장군은 깔고 앉았던 방석을 바다로 던지고 첫 발은 이 돌에 디뎌 탈출하고 다른 발로 신엄리의 오성돌을 짚어 바다로 몰래 건넜다’고 합니다.

바위 발자국은 이때 생긴 오른발 발자국이며 엄지발가락 자리에서 물이 솟아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이 솟는 곳을 횃부리라고 합니다. 횃부리라고 하는 이유는 옛날 장군이나 귀족이 신는 신발을 ‘홰’라고 한데서 연유합니다. 장수물 옆에 있는 작은 물통은 애기업개(어린아이를 업어 주며 돌보는 여자)가 밟은 물로서 ‘아기발자국’이라고 합니다.

 

6. 옹성물 |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756 극락사 경내 | 용출 양호 | 관리 필요

삼별초의 지도층이 먹던 옹성물

 

옹성물은 극락사 경내에 있는 산물입니다.  옹성은 무너지지 않는 성이라는 뜻인데, 성곽 옆에 생수가 솟아나는 지형을 보고 옹성물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옹성물은 삼별초가 항파두리성에 웅거할 때 김통정 장군을 위시하여 주로 군관, 장수 등 지도층만 먹던 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백성이나 병사, 시녀는 인근에 구시물을 먹고 이 산물은 장군이나 계급이 높은 사람들만 전용했다고 합니다. 이 산물은 극락사 건립 전까지도 고성리와 장전리 주민들이 집안에 정성을 드리는 제가 있으면 꼭 이 옹성물을 길어다 음식을 만들 만큼 이 샘을 매우 신성시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용천수가 솟는 곳에 식수통과 두개의 물통이 기역자 모양으로 되어 있었으나 물통의 누수 및 노후화로 인하여 2017년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하였습니다.

조사 시 옹성물은 낙엽 등이 샘물 위로 떨어져 샘물이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였습니다. 매실나무 아래, 아름다운 산물이 그 가치를 발휘하도록 주기적인 정비가 필요합니다.

 

7. 구시물 |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798-3 일대 | 용출 좋음

삼별초의 장병들이 마셨던 구시물

구시물은 항파두리성 밖에 있는 용천수로 ‘구시(구유)’+’물’의 합성어입니다. ‘구시’란 나무나 돌로 수로를 파서 만든 것을 뜻하는데, 산물 아래에 있는 논에 물을 댈 때에 나무 구시가 있어서 붙여졌거나, 물 흐르는 곳이 구시 모양으로 되어 있다는 데서 연유합니다. 구시물은 삼별초 항쟁 때 병사와 주민의 식수원으로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삼별초 당시 이 산물을 보호하기 위해 성 밖인데도 외성을 쌓아 관리하였으며, 예전에 콜레라가 유행할 때도 이 물을 먹은 사람들은 한 사람도 병에 걸린 적이 없다고 알려질 정도로 질이 좋은 산물이었다 합니다. 한 때는 구시물을 이용하여 이 일대에 논을 조성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사당시에는 물칸에 물떼가 껴 있긴 했지만 용천수 주변이 주기적인 관리가 되고 있었고, 용출상태도 아주 좋았습니다.

 

8. 유수암천 |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1939 | 용출 매우 좋음 | 마을의 보전, 관리 노력이 돋보이는 산물

유수암리를 만든 유수암천

고려시대 원종 12년(1271년)에 삼별초군이 항파두리성에 있을 때 함께 따라온 어느 고승이 유수암 절동산 아래 용출하는 맑은 샘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언덕 아래 암자를 지어 ‘태암감당’이라 하고 불사를 시작하였고, 삼별초 김통정 장군의 가족과 부하들이 이곳으로 이사하여 마을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그래서 유수암천을 태암천이라고도 합니다.

유수암천은 몇 안되는 중산간 지대 용천수 중에서도 용출량이 많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원천(源泉)은 더럽혀지지 않도록 ‘몸’자 형태로 두칸으로 나누어 식수와 저수조를 만들었습니다. 수로를 통해 20m 쯤 떨어진 곳에 다시 ‘몸’자 형태의 세 칸으로 나눈 빨래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빨래터에서 나온 물은 연못을 만들어 우마 급수용으로 사용하였습니다.

1950년 경 입촌조 홍덕수가 가솔과 노복들을 데리고 유수암리로 들어오면서 유수암천도 개수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이 물을 이용하며 연못도 크게 파고 주변으로 논을 만들어 생활용수 뿐만 아니라 농사도 지었습니다. 유수암천은 옛부터 여름철에 싸늘할 정도로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여 역질이나 노인병 등을 예방해주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또한, 마을 주민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4.3 당시 마을이 전부 소개되어 버리자 물의 흐름이 그치고 식수통 밑바닥에 약간의 물만 고여 있을 정도였지만 마을이 재건되어 사람이 살기 시작하니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유수암천이 지금의 모습을 한 건 1987년입니다.

2021년 조사시에는 용출구 부분에 중국새뱅이가 보였지만 이번 조사에는 중국새뱅이가 보이지 않았고, 용출상태는 매우 좋았습니다.

 

9. 마구리물(마고리물) | 제주시 애월읍 하소로 391-8 | 용출 양호 | 정기적인 관리 필요

대몽항쟁 때 군마에게 먹이던 마구리물

장전초등학교(사장밭) 동남쪽 200m 지점에 위치한 샘물입니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는 샘물로서 물이 귀한 제주의 중산간 마을 주민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물이 었다 전해집니다. 마을포제시 제수몰로 사용하기 위해 7일 전에는 가시나무로 애워 싸 통제하기도 하였다 합니다. 옛날에는 물통 바로 북쪽 들판까지 흐르는 물을 이용하여 논밭을 가꾸고 주민의 생활용수 활용하였습니다. 이 물이 바로 대몽항쟁 당시 역장의 지휘하에 사장밭에서 훈련하던 군마에게 물을 먹이던 곳이라 추정되며, 이에 연유하여 마고리물이란 이름으로 오늘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조사 당시 용출은 양호하였고, 주변 식생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안내표지판은 있었으나 관리가 되지 않아 생활쓰레기와 낙엽이 많이 유입되어 있었습니다.

 

10. 건나물 | 제주시 애월읍 장유서길 28-2 | 용출 양호

장전리의 귀한 산물이었던 건나물

마을에서 붉은목이 내창(건천) 건너편에 있다하여 건나물이라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100여년전 먹는 물통(웃통, 큰새통, 죽은새통), 큰물통(남탕, 여탕, 공중탕, 우마수) 마고리물, 동시굴통이 있었다합니다. 집안에 제사나 명절에는 어멍들이 아침 일찍 웃통에서 물 한 허벅을 지고가서 음식을 만들고 강과 바당이 없는 중산간 마을에서는 큰물통에서 수영과 낚시를 즐기곤 하였다 합니다.

무더운 여름철 콩밭, 조밭 검질을 메면서 흙먼지를 뒤집어 쓴 것을 목욕하기도 하고, 여름철 목장에 소를 방목하였다가 겨울에는 쇠막에서 키우고 물먹이러 이곳에 왔다가 소싸움도 벌어졌던 추억이 있는 산물입니다. 또한 제주 4.3사건 당시 마을이 불에 타고 해변 마을로 소개한 이후, 재건하면서 이 물을 떠다가 흙과 보릿짚을 섞어 흙질하여 담을 쌓아 초가집을 짓기도 하였고, 마을에 불이 나면 물허벅으로 물을 지고 가서 불을 끄는 방화수 역할도 하였습니다. 1980년대 상하수도가 보급되기전 장전마을주민의 식수는 물론 농경생활에 다목적으로 활용하였던 연못이었습니다.

 

11. 마고수 | 제주시 애월읍 장유서길 28-2 | 용출 양호 | 안내표지판 없음

붕어가 사는 마고수

건나물 바로 옆에 있는 산물로, 과거 장전리 마을 주민들이 유수암으로 물을 뜨러 갔는데 유수암리 주민들이 이를 달가워 하지 않아 1900년대에 이 산물을 찾고 용천수로 조성하여 활용하였다 전해지고 있습니다. 붕어도 살고 있는데 과거에는 이 용천수 안에 있는 붕어를 신성시 여겨 잡는 것을 꺼려 했다고 합니다.

조사당시, 연못형태로 조성되어 있었으며, 생활쓰레기 등이 보여 관리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11. 개물 | 제주시 애월읍 하소로 55-48 | 용출 양호 | 안내표지판 없음

마을 주민들의 소중한 산물이었던 개물

개물은 과거 인근 마을주민들이 모두 쓸 정도로 이 마을에서 귀한 산물이었습니다. 지금은 바로 옆 개인주택의 연못처럼 전락해버려 용천수 임을 알고 들여다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사유화 된 모습이었습니다. 주변은 겹담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2. 궤물 |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산136-6 | 용출 양호 | 안내표지판 없음

오름에서 솟는 산물, 궤물

제주도 360여개의 오름 중에 용천수가 있는 오름은 아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궷물오름에서 궤물이 있어 식수 뿐만 아니라 아래로 흐른 물은 마소의 급수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연못은 가축뿐만 아니라 각종 양서파충류의 서식지이면서 노루, 오소리 그리고 새들의 오아이스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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