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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용천수 이야기

제주 용천수 이야기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지난 2018년부터 용천수 조사를 매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사 결과를 정리하여 용천수 가이드북도 작년까지 3권 발간했습니다. 올해도 용천수 보전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용천수를 중심으로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28일은 서부지역의 하논, 운랑천, 녹고물, 솔박물을 찾았습니다. 그 내용을 싣습니다.

 

* 운랑천 : 탐라국 왕자의 집이 있었다던 용천수

강정 염둔동에 있는 운랑천(雲浪泉)은 마을의 설촌 역사가 담긴 용천수이다. 염둔동은 강정동 북쪽에 있는 중산간 마을이다. 현재 법정상으로는 강정동에, 행정상으로는 대천동에 속한다.4 · 3 때 폐동되었다가 1950년 대 초반에 재건되었다. 염둔동이라고도 불리는데 염돈은 염소를 모아두었던 곳이라 한다.

탐라시대 때는 운랑천을 중심으로 탐라국 왕자가 머무는 집인 왕자구지(王子舊址)가 있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조선초에는 고득종이라는 사람이 그 터에 다시 별장을 지었고 과수원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탐라순력도에는 운랑천의 동편에 조선시대 조성된 ‘고둔과원’이 그려져 있고 이 물을 이용해 만든 논과 집이 몇 가구 그려져 있다.

운랑천

백호 임제는 조선 선조10년(1577)에 제주에 왔다가 ‘남명소승’이란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고득종의 옛 집을 찾고 “맑은 샘이 돌구멍으로 흘러나오므로 곧 손으로 움켜 마시고 매화 한 가지를 잡아 꺾고는 아쉽게 돌아섰다”라고 기록한다. 임제가 말한 샘은 운랑천으로 예나 다름없이 지금도 창창히 흐르고 있다.

운랑천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3월에 시멘트로 단장하는 정비를 진행했다. 그 이후 1985년에 운량천이란 비석을 세우고 다시 새롭게 제주판석 붙임 형태로 개수했다. 산물에 있던 큰 암반은 개수하면서 사라졌다. 다행히도 산물 주위를 에워싼 돌담은 그대로 남아있다.

운랑천은 독특하게도 산물 입구에 돌도고리(도고리는 함지박의 제주어)가 있다.지름 2cm 정도의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어 물을 받아서 사용하다가 빠지게 하는 용도로 보인다.

운랑천 길 건너편에 팡돌 등 옛 산물터 흔적이 남아있다. 도로 개설 등으로 예전보다 규모가 많이 축소되어 있음을 추정케 한다.

물은 크게 네 칸으로 구분된다. 물이 용출하는 주위로 돌담을 쌓고 첫 번째 칸의 물은 제사용수와 식수로 사용됐다. 두 번째 칸은 음식물을 씻는 곳, 세 번째 칸은 몸을 씻는 곳, 네 번째 칸은 빨래를 하는 곳으로 이용됐으며 이곳을 넘쳐 밖으로 흐르는 물은 가축들을 먹였다.

* 하논 용천수 : 제주도 유일의 논농사 지역

서홍동과 호근동의 경계에 있는 하논은 보롬이(보로미)오름에 둘러싸인 큰 분지형 습지이기도 하며 오름 그 자체를 말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대답(大沓) 또는 조연(藻淵)이라 하여 ‘연못을 이루고 논이 많다’는 것을 추정케한다. 현재 제주도에서 거의 유일하게 논농사가 행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500여년 전부터 벼농사를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큰 논(大畓)이란 의미의 ‘한논’에서 ‘하논’이란 이름이 붙어졌다.

하논 분화구는 칼데라지형(화구의 일종으로 화산체가 형성된 후에 대폭발이나 산정부의 함몰에 의해 2차적으로 형성된 분지)으로 분화구 둘레는 3774m이며 정상부 직경은 1000~1150m이다.

몰망수

분화구 바닥 면적은 21만6000㎡로서 한반도 최대의 마르형 분화구이다. 마르형 분화구란 산굼부리처럼 용암이나 화산재 분출 없이 지하 깊은 땅속의 가스 또는 증기가 지각의 틈을 따라 한 군데로 모여 한번에 폭발하여 생성된 화산체를 말한다.

지표면보다 낮게 형성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15m의 퇴적층 속에는 빙하기를 포함한 5만년의 기후, 식생, 지질의 변화가 기록돼 있어, 수 만년 제주 섬의 비밀을 풀어낼 수 있는 단서가 숨어 있다고 한다. 이런 단서의 시작은 천연호수였던 하논의 물이다.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500년 전까지만 해도 하논은 직경이 1km가 넘는 큰 호수가 있었고, 가운데 서너 개의 섬들이 떠있는 울창한 원시림에 둘러싸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구호였다고 한다. 그 후에 쌀이 귀하고 식량 사정이 어려워 논을 만들기 위해 화구호의 벽을 허무는 공사가 이뤄졌을 것이라 보고 있다. 지형이 논으로 바꾸어 진 후 하논의 산물은 외돌개가 아닌 솜반내를 거쳐 천지연 폭포에 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하논이 크나큰 습지가 된 것은 이곳에서 나오는 용천수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몰망수, 동언세미, 섯언세미 용천수가 있다.

몰망수는 주로 농사용으로 사용했으며, 몰망수는 약 80평 규모의 연못에서 용출되는 샘이다. 몰망수는 하논 한 장 위쪽에 산물이 솟아나서 넓은 웅덩이가 되고 몰망같은 풀이 자란다고 하여 ’몰망소‘라고 하였다. ‘탐라지’에서는 ‘삼매양(지금의 삼매봉)에 있고 빈조가 많기 때문에 조연이라 부르며, 겡이(게의 제주어)가 살고 있고 동쪽으로 물골(수로의 뜻)를 만들어 논농사를 짓고 있다’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빈조는 물속에서 나서 물위로 떠오르는 풀과 물속에서 자라는 풀을 말한다.

하논은 습답(흐렁논, [흐렁은 수렁을 일컫는 제주어로 물 빠짐이 좋지 않은 논])이라서 논농사 짓기가 불편하였는데, 지관(정시)이 ‘동쪽 언덕에 몰골(수로)을 파면 논농사가 수월하다’라고 하여 지금의 하논 입구인 동쪽에 수로를 내어 논농사가 수월했다는 말이 있다. 제주에서 벼농사를 ‘나록농사’라 하였는데, 지금까지 나룩농사의 맥을 유일하게 이어오는 곳이 하논이다. 호근대답(好近大沓)이라고 호근리에 큰 논이 있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 하논의 논농사는 당시에도 제법 컸던 모양이다.

몰망수는 약 260㎡의 규모의 못을 형성하고 있으며 1일 용출량은 1000~5,000㎥이다. 격자모양의 인공수로를 따라 2만6000평(8만5950m²)의 논에 유입되며, 하논 분화구에서 가장 낮은 남쪽 화구벽의 수로를 통해 호근천으로 유입되고 천지연 폭포수가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봉림사 경내의 섯언세미

하논에는 몰망수외에도 동언새미와 섯언새미도 있다. 동언새미는 하논분지 북서사면에 있는데, 과수원 창고 옆에 있으며 과수원에서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고 당물이라고도 한다. 이 산물은 섯언새미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섯언세미는 웃거지(웃거제)에 있는 봉림사 경내에 있다. 이 산물은 사찰에서 경내에 작은 연못과 식음대 등을 만들고 사찰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사찰입구에는 산물을 하논으로 보내는 배수구를 만들어 주민들이나 주변의 과수원 등에 제공하고 있다. ‘언새미’에 ‘언’은 ‘차갑다, 춥다, 얼다’의 뜻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얼어있는 산물’이라고 말한다.

이들 산물들은 용암경계면 바위틈에서 솟아나고 있다. 동언세미가 내리는 곳에 주변의 물을 모아두는 인공수로(동쪽 언덕에 연결된 몰골)와 연결된 인공호수가 있다. 규모로 봐서는 못이지만 여기서는 벼농사를 위해 일부러 인력으로 파서 만든 것이라서 인공호수라 부른다.

* 녹고남매의 슬픈전설이 담긴 녹고물

제주 땅 맨 서쪽에 자리한 수월봉은 우리말로 ‘녹고물오름’이다. 일명 ‘물노리오름’, ‘물나리오름’으로 물이 내리는 오름이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넓은개 바닷가 단애인 벼랑의 바위틈에서 엉알물이라는 녹고물(노꼬물, 용운천, 엉알물)이 흘러나와서 바다로 물이 떨어져 내리는 오름이기 때문이다.

녹고물

수월봉은 높이가 78m로 비교적 낮은 해안가 오름이지만 환상의 원형분화구는 차귀도 앞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로 지질적으로 매우 독특한 오름이다.

수월봉을 대표하는 산물인 녹고물에는 수월이와 녹고의 효심이 전설로 전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병든 홀어머니를 위해 약초를 구하러 나선 오누이인 수월이와 녹고는 수월봉 벼랑에서 오갈피란 약초를 발견한다. 오빠인 녹고의 손을 잡고 벼랑 끝의 약초를 캐던 누이동생인 수월이, 하지만 오빠의 손을 놓치고 벼랑으로 떨어진다.

동생을 떠나보낸 녹고는 슬픈 나머지 7일간 울다가 지쳐 그 자리에서 바위로 변해버리고 누이를 부르며 눈물을 쏟았는데 바로 이 눈물이 바위틈으로 흘러내리는 녹고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 산물은 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누이를 향한 녹고의 슬픔이 가시지 않은 듯, 수월봉 북쪽 단애 곳곳에서 용의 입을 통해 흘러내린다.

실제 녹고의 눈물이라는 산물들은 해안절벽의 화산재 지층을 통과한 빗물이 지층 아래 있는 진흙으로 된 미고결 불투수성 지층인 고산층에 막혀 지표면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엉(낭떠러지 비슷이 된 암석을 의미)과 알(아래下)을 합성하여 엉알물이라고도 한다.

수월봉 벼랑에서 떨어지는 산물은 일명 물 맞는 물이라 해서 백중, 처서 때 많은 사람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찾았던 물로도 유명하다.

또한 차귀십경의 하나인 ‘용암폭포’로 용암과 엉알 아래 해안절벽 단층들이 굴곡을 이루면서 마치 용이 꿈틀거리다고 하여 용운천이라 했다. 절벽 위에서 조그마한 물줄기가 뚝뚝 떨어져 마치 폭포와 같다며 용암폭포로 명명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제513호)이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으로서 수월봉 바닷가에 만들어진 해안산책로에서는 1967년에 세운 표지석 ‘용운천(龍雲泉)’이 있다. 용운천은 용이 구름을 타듯 물이 내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섬에서 위대한 사람이 나오는 것이 두려워 제주 섬의 여러 곳에 혈맥(지맥)을 끊고 물혈(수맥)을 끊은 중국 송나라 호종단이 중국으로 돌아가려고 배를 타고 차귀도 근처에 이르자 노한 한라산신이 용으로 변하여 배를 침몰시켰다는 전설과 연관된 섬의 생명수인 물을 지켰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이름이다.

 

* 선사시대 주거지가 있는 솔박물

솔박물

계곡 안으로 막 들어서면 두 군데서 용출되는 괸물(ᄀᆞ래물)을 만날 수 있다. 이 산물은 안덕계곡 입구 바위그늘집자리 밑에 있는 물로 나무와 돌 틈에서 고여 있는 듯 흘러나온다고 해서 괸물이다. 선사인의 주거지인 바위그늘 집자리가 있는 것은 이 용천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풍부한 용천수와 함께 하천 주변의 울창한 숲이 있었기 때문에 선사시대 사람들이 이곳에 주거지를 형성한 것이다. 지금은 ᄀᆞ래(맷돌의 제주어)에서 흘러 나오도록 개수하였다. 그래서 ᄀᆞ래물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 위 내용은 고병련(섬의 산물), ‘고영철의 역사 교실’ 블로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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